때가 차서 보내주신 메시아

< 본문 – 갈라디아서 4:4-7 >

헬라어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단어가 두 개가 있습니다. 크로노스(χρονος)와 카이로스(καιρος)입니다. 크로노스는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지는 객관적인 시간, 매일같이 반복되어 흘러가는 시간을 말합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현재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어제를 지나 오늘을 맞았고,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반면 카이로스는 사람마다 다른 의미가 부여되는 주관적인 시간을 뜻합니다. 2022년을 세계 모든 사람이 보내고 있습니다만,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2022년 2월 24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1년 가까이 전쟁을 벌이면서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2022년 2월 24일은 별 의미없이 지나가는 시간(크로노스)였다고 한다면,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그날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시간(카이로스)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물론 우리에게 매일 반복되어 주어지는 시간이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 시간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라면 그것은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많은 크로로스의 시간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내게 특별한 의미와 추억이 있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없다면 그 인생은 허무하게 지나는 삶이 되고 맙니다.

  왜 그런지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카이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간의 신’입니다.(그림) 앞머리는 길게 기르고 뒷머리에는 머리털이 없습니다. 어깨와 발뒤꿈치에는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저울을 들려 있습니다. 앞머리가 긴 이유는 사람들이 붙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고, 뒷머리가 없는 이유는 지나가고 난 후에는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깨와 발뒤꿈치에 날개가 달려 있는 것은 최대한 빨리 지나가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손의 저울은 모두에게 시간이 공정하게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두에게 시간은 공정하게 주어집니다. 그리고 시간은 빨리 지나갑니다. 그런데 내게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은 사람은 그 시간이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지만, 그 시간을 놓쳐버린 사람은 여전히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카이로스의 시간을 만드는 것은 내 삶에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시간이 지나면 다 알아서 해결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고, 흘러가고 있는 시간 속에서 어떤 순간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할지 고민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선택을 한다면 그는 크로노스에서 카이로스라는 시간을 만들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카이로스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개입하셔서 역사하시는 시간을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의 삶과 우리의 역사에 개입하실까요? 물론 그 시간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계획하시고 결정하신 순간에 우리의 삶과 역사에 카이로스로 개입하십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한 가지 규칙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크로노스라는 시간이 흘러 그 시간이 꽉 찼을 때 카이로스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모세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세기 15:13-14)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야곱의 시대에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총리였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조가 들어서면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애굽 땅에서 노예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것도 아주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비참한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여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준비시켜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가혹한 노동으로 인해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상황이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게 됩니다.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 땅에 보내 그들을 거기에서 건져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그들에게 보내시기 80년 전부터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에 모세를 그들에게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혹독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 그들을 애굽 땅에서 건져내신 것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시는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입니다. 그들은 그 출애굽 사건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카이로스의 시간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든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 카이로스의 역사를 만들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신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카이로스입니다. 온 인류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카이로스의 사건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2000년 전 바로 그 때 보내주셨을까요? 조금 더 일찍 보내주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가장 처음 메시아를 보내주실 것을 암시하는 말씀은 창세기 3장에 나옵니다. “내가 너로 여자의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세기 3:15) 이 말씀은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한 뱀에게 주신 저주의 말씀인데,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이 메시아를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할 메시아, 인간을 죄악으로 유혹하는 마귀의 세력을 짓밟고 승리하실 메시아를 주시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도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메시아를 보내실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약속하신 그 메시아를 기다렸는데, 하나님께서 때가 되었을 때 약속하신 메시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아기 예수님으로 이 땅에 태어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카이로스 사건을 두고 “때가 차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때’는 카이로스가 아니라 크로노스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범죄한 이후 수많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때가 가득 찼을 때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다는 뜻입니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어느 순간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크로노스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카이로스의 역사를 만드시기 위해서 때를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이 때가 가장 적합한 때이겠구나’ 라고 생각하시고선 바로 그 때 아기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만드신 순간이 바로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성탄절, 바로 오늘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만드신 바그로 그 때가 어느 때입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그 때를 카이로스로 만드신 것입니까?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간절하게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특별히 두 가지 의미 때문입니다. 하나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 거의 400년 가까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율법이 주어져 있었지만, 그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지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선지자를 보내셔서 당신의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주전 400년 경에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말씀을 주신 이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세례 요한이 예수님보다 앞서 세상에 등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 때 많은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이 메시아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메시아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에게 직접 묻기도 했습니다. ‘당신이 메시아 아니냐?’고 말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그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누가복음 3:15)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세례 요한이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니까 세례 요한이 메시아(그리스도)이신가를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으로 곤핍한 상태였고, 간절하게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영적인 갈급함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욕구도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에 이어 헬라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스라엘은 주전 142년부터 63년까지 약 80년 동안 하스몬 왕조 시절 잠시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주전 63년 로마의 폼페이 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점령되면서 로마의 통치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력한 메시아가 나타나서 다시금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줄 것을 강렬하게 열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렬하게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때에 하나님께서는 유다 땅 베들레헴에 아기 예수님을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그 탄생한 날이 바로 성탄절이고, 그 날은 온 인류에게 구원의 빛이 비치게 된 하나님의 카이로스(시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강렬한 갈망이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시간을 만들어내십니다. 지루한 크로노스의 시간처럼 보이지만, 그 시간이 점점 무르익어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게 카이로스-하나님의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실 시간입니다.

  2022년 성탄절을 맞는 오늘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가 역사하시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도 강렬한 열망이 있습니다. 지금이 영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3년 동안 계속된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해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움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엔데믹 시대에 접어들었다지만, 아직도 재유행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을 정도로 이게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지난 2월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세계인의 공분을 샀습니다. 그러나 세계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도, 러시아의 팽창 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뽀족한 대안 없이 러시아에서 온 가스가 끊길까 봐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경제가 평화보다 우선하는 우스운 현실 앞에 정의는 내팽개쳐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인한 곡물 파동이 지구촌을 강타하더니, 이번에는 글로벌 경제위기가 다시금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1997년에 겪었던 IMF보다도 더 강력한 위기가 올 것이란 전망까지 있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이런 시대적 요청 속에 우리에게 희망은 오직 예수님 뿐임을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때가 차서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주셨는데,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종교적인 갈증이 해갈된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대제사장과 서기관 등은 자신들의 권력을 움켜쥐고서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로마로부터 해방되어 독립을 쟁취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에게 변한 상황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있다면 오직 하나, 그들의 심령에 하늘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소망을 품게 되었고,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상황은 너무나도 힘들고 불안합니다. 여전히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소리들이 지구촌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제 이곳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시간을 만드실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 오심으로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만드신 것처럼 말입니다. 카이로스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변화는 신분의 변화입니다. 죄악에 종노릇하며, 환경의 지배를 받던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이보다 더 큰 사건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보다 더 큰 카이로스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면 그건 7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들로서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자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성탄절은 우리에게 카이로스입니다.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그리고 성탄절은 우리에게만이 아니라 온 세계에 카이로스입니다. 온 세상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구원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진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나를 위해 하나님의 사건인 카이로스를 만드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십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카이로스인 성탄이 우리에게 주는 은총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얻은 자는 세상이 불안정하다고 불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고백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크로노스 가운데 카이로스를 만드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살 수 있습니다.

  오늘 기쁜 성탄절에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사건 카이로스가 다시 한 번 역사하기를 소망합니다. 그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때를 기대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입니다.

< 2022년 12월 25일 주일(성탄절)낮예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