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온 길, 가야할 길

< 본문 – 마가복음 9:30-37 >

러시아의 사실주의 화가 일리야 레핀(Ilya Yefimovich Repin, 1844-1930)은 역사적인 사건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린 화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 가운데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습니다.(그림1)

  노인의 품에 안겨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젊은이는 황태자인 이반이고, 그 젊은이를 끌어앉고 황망해야 하는 노인이 아버지 이반 뇌제(雷帝)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반 4세(Ivan IV, 1530-1584)라고 불리는 이반 뇌제는 옛 로마제국의 영광을 누리겠다는 생각으로 자기 스스로에게 차르(tsar-황제)라는 칭호를 붙였던 사람입니다. 그는 러시아에 남아 있던 몽골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고 모스크바 중심의 대공국이었던 러시아를 제국으로 만든 러시아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를 ‘이반 대제’라는 호칭 대신에 ‘이반 뇌제’라고 부르는 이유는 과격하고 포악한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는 아들의 궁을 방문하게 됩니다. 당시 그는 과대망상과 분노조절장애 등 여러 정신병적 증상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반 뇌제가 아들의 궁을 방문했을 때 그를 맞이한 사람은 아들인 황태자의 부인이자 자신의 며느리인 엘레나였습니다. 임신 중이던 엘레나의 복장이 황제를 대하는 예우에 벗어난다고 생각한 이반 뇌제는 분을 참지 못하고 임산부인 며느리를 폭행해 유산에 이르게 합니다. 이에 아들 이반 왕자가 아버지에게 거칠게 항의하자, 이반 뇌제는 이성을 잃고 들고 있던 쇠지팡이로 아들을 사정없이 내리칩니다. 아버지가 내리친 지팡이에 머리를 맞고 쓰려진 아들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아버지 이반 뇌제는 제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파악하게 됩니다. 그리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아들을 끌어안고 충격과 후회와 슬픔과 분노와 두려움에 가득한 모습으로 어찌할 줄 몰라 합니다. 핏발 선 눈은 허공을 쳐다보며 절망적인 표정으로, 마치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후회스러움이 가득 담긴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관자놀이에서 피가 솟구치고 있는 아들의 머리를 앙상한 손으로 황급히 막아보지만, 손가락들 사이로 흘러나오는 뜨끈한 피는 멈추질 않습니다. 카펫에는 이미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고,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의 모습과 실내의 음침한 분위기는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대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죽어가는 아들은 분홍색 빛이 감도는 자개 색 옷을 입고 있어 이 그림에서 유난히도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고, 그 아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들의 무고함을 보여주는 상징일 것입니다.

여러분, 광기어린 아버지의 분노가 결국 아들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옛 로마제국의 영광을 누리고자 했던 러시아 최초로 차르(황제)라고 불렸던 이반 4세는 그렇게 아들을 죽이고 난 후,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다고 합니다. 그는 고독하고 외로운 군주가 되었고, 결국 3년 후 그의 나이 54세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는 러시아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그의 말로는 비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이룰 수 있고, 그것을 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었고 그것을 누린다 하더라도 그의 인생이 성공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내가 가야할 길,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자신이 입어서는 안 되는 옷을 입고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내가 앉아서는 안 되는 자리에 앉기도 하고, 내가 감당하기 벅찬 권력의 자리에서, 휘둘러서는 안 되는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도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9:2절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변화산에 올라가셨습니다. 변화산에서 제자들은 세상의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영화롭게 변화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인물 두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모세는 율법(토라)의 대표자이고,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자입니다. 그들이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나눈 대화의 내용을 누가복음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 새”(누가복음 9:29-30) 황홀한 영광 중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나눈 대화의 내용을 아주 간단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장차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에 대해 말씀을 나눴다’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신 이유를 성경은 기도하시기 위함이었다고 말합니다.(누가복음 9:28) 그런데 기도하시던 중에 예수님의 용모가 영광스럽게 변화하시더니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셨다는 것입니다.

이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빌립보 가이사랴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고, 베드로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 16:16)라고 말입니다. 그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비로소 제자들에게 당신이 가셔야 할 길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권력자들에게 붙잡혀 죽임당하신 후 제삼일에 살아나신다’고 말입니다. 그게 메시아로서 당신이 가셔야 할 길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공개적으로 당신의 죽으심에 대해서 말씀하신 후에 변화산에서 그 말씀이 분명하다는 것을 모세와 엘리야를 통해서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게 변화산 사건이 갖는 중요한 의미입니다. 그리고 변화산을 내려와 가버나움을 가시던 길에 예수님께서 다시 한 번 당신의 죽으심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게 오늘 본문 30-31절의 말씀입니다.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오시던 길에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당신의 행적을 알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31절의 말씀처럼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당신의 죽으심에 대해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제자들을 가르치셨다.’는 말씀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의 죽으심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말씀을 나누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에 대해서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죽으심에 대해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깨닫지 못하니까 자세하게 설명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세 번씩이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죽으심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말씀으로 선포하셨고, 두 번째는 변화산에게 모세와 엘리야를 통해서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버나움으로 오시면서는 자세하게 가르쳐주시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쯤 되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이해할만도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께서 하신 죽으심에 대한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본문 32절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 우리가 메시아요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예수님, 변화산에서 영광스럽게 변화하신 그 예수님께서 왜 죽으셔야 한다고 말씀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묻기를 두려워했다’는 말씀은 공포감에 사로잡혔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죽음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단어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죽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두려움뿐만 아니라, 스승이시요 메시아이신 주님께서 죽으신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주 진지하게 당신의 죽으심을 말씀하시는데, 도저히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고 그 말씀을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 두려움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평소 생각해 왔던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들로 돌아가버립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물으신 이유는 그들이 가버나움으로 걸어오는 길에서 ‘누가 크냐?’하는 문제로 쟁론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크냐?’라는 말을 조금 더 정확하게 번역한다면 ‘누가 더 크냐?’ ‘ 누가 최고로 높으냐?’입니다.

  여기서 누가 크냐는 논쟁의 내용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누가 더 주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인지에 대한 논쟁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가실 때 세 명의 제자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어쩌면 그 세 명의 제자들은 다른 제자들보다 자신들이 주님의 사랑을 더 많은 받은 제자라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3:23절에 ‘주가 사랑하시는 자’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성경해석가들은 그를 요한복음의 저자인 제자 요한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니까 요한은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세 명의 제자 중에서도 요한은 자신이 더 사랑받는 제자라고 주장했을 것이고, 베드로는 자신이 제자 무리에서 우두머리 격이기에 자신이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가롯 유다는 자신이 제자 공동체의 돈주머니를 맡았기에, 주님께서 자신을 더 사랑하셔서 돈주머니를 맡긴 것이 아니겠냐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로부터 얼마나 사랑을 받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것과 얼마나 충성스럽게 주님의 뒤를 따라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노라 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을 주님을 외면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자신을 가장 많이 사랑하신다고 자랑하면서도 주님의 제자된 길을 가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나는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는 자긍심을 갖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주님으로부터 사랑 받은 것처럼 나도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은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차별하지 않습니다. 누구를 더 사랑하고 누구를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누구는 사랑하시는데 누구는 사랑하지 않으시는 게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내가 스스로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 깨닫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누군가보다 더 사랑받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더 사랑하신다는 생각도 잘못된 것입니다. 목사라고 더 사랑하시는 것도 아니고, 오래 신앙생활했다고 더 사랑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을 더 사랑하시고,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고 더 사랑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자꾸만 줄을 세우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십자가의 사랑도 차별하여 베풀어지는 것처럼 줄을 세우려 합니다. 그런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특정한 누군가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을 희생하시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누가 크냐?’라는 논쟁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본질적인 욕구일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우리 민족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메시아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제자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자들도 내심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주실 메시아이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이야기 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이런 요청을 합니다.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마가복음 10:37) 여기서 말하는 ‘영광중에’는 이스라엘 땅에서 로마의 군대를 몰아내고 이스라엘의 주권을 회복하실 때, 주님께서 그 주인공이 되셔서 왜적들을 다 몰아내고 주님께서 왕좌에 오르실 때라는 말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는 목적이 혁명을 일으켜 로마를 물리치고 다윗의 나라를 회복해 주시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인 자기들이 높은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게 될텐데,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오를 것인가가 큰 관심거리였던 것입니다. ‘주님이 누구를 더 사랑하시느냐? 누가 주님의 사랑을 더 많은 받는 사람이냐?’ 하는 논쟁도 결국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논쟁인 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본문 35절) 높은 자리를 탐내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누가 더 큰 욕망을 가지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주님의 마음을 닮는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갈망하는 것보다 누군가를 먼저 섬길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높은 자리에 오르려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더 많이 섬기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섬겨주기 위해서 높은 자리에 오를 뿐입니다. 사람들에게 명예를 얻고 칭찬을 받기 위해서 높은 자리를 탐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고 주님의 도구로 쓰임받기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제자들은 가버나움에 오는 길에서 ‘누가 크냐?’하는 문제로 논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에는 오직 십자가의 죽으심만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고난받고 십자가에 죽으심의 길을 가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도 십자가의 길을 가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가복음 8:34) 주님이 지금까지 걸어오신 길도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가셔야 할 길은 십자가를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십자가의 길이 아닌 영광을 얻으려는 욕망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영광을 얻는 길을 가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예수님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품었고, 예수님의 마음과 다른 마음을 품고 걸어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가야할 길은 십자가의 길’이라고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가야 할 길도 다르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오셨습니까? 아니 어떤 길을 가고자 하십니까? 지금 이순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걸어온 길이 아니라, 앞으로 가야할 길입니다. 지금까지는 우리의 욕망을 위해 걸어왔을지라도, 이제부터는 나의 욕망을 내려놓고 주님의 제자가 되어 주님의 뒤를 따라 나의 십자가를 지는 길을 가길 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을 기쁨으로 가야 합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에 예수님께서는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영광을 얻는 길을 가려 하셨다면 결코 나귀를 타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개선장군이나 대관식을 올리는 황제처럼 웅장하고 위엄찬 말을 타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나귀를 타셨습니다. 그것을 스가랴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스가랴 9:9) 그렇습니다. 주님은 겸손하신 분입니다. 겸손하신 주님께서 원하시는 제자는 욕망으로 가득한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닮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닮으려 했던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겸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제자의 모습을 보여준 믿음의 선배들은 모두 겸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겸손한 사람만이 주님의 뒤를 따라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어느 길을 가길 원하십니까? 지금까지 걸어왔던 것처럼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길을 계속 가시렵니까? 아니면 주님이 가길 원하시는 십자가를 지는 길을 가길 원하십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왔느냐는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어떤 길을 가려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겸손하게 믿음의 길을 따라 살았더라도 지금 이후부터 내 자신의 욕망의 길을 가려 한다면 그는 분명 잘못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제자들처럼 욕망을 꿈꾸며 살아왔다 하더라도, 이제부터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깨닫고 주님께서 가라 하시는 길인 십자가의 길을 가려 한다면 그는 분명 주님의 제자로 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선택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결단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욕망의 길을 내려놓고, 주님께서 가셨던 십자가의 길을 가길 원하십니다. 그 길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우리가 그 길을 가길 원한다면 주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가 가는 십자가의 길을 넉넉히 감당하도록 힘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겸손하여 주님을 닮은 길을 선택하여 간다면 주님께서 기쁨으로 우리의 걸음에 힘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넉넉히 감당하도록 말입니다.

< 2023년 4월 2일 주일낮예배-종려주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