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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04-01 10:21

이름 없이 드린 전부 <4월 1일 종려주일>

글쓴이 : 안효관

제목 - 이름 없이 드린 전부
본문 - 누가복음 19:28-36

유대인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리고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주님은 아무 말 없이 사람들보다 앞서서 성큼성큼 걸어가셨습니다. 그 뒤에는 3년 동안이나 주님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이 묵묵히 따라옵니다. 누구 하나 말을 붙일 수 없는 엄숙한 행렬이었습니다.
벳새다 들녘에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셨을 때, 주님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수많은 인파가 예수님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었습니다. 제자들도 그런 무리들과 동조해서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왕좌에 오르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좋은 기회였는지 모릅니다. 인기와 명예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권력의 자리도 거머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기회를 단호하게 거부하셨습니다.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고 하는 무리들을 따돌리시고 혼자서 조용히 산으로 피해버리셨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일 년 쯤 지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먼저 예루살렘을 향하여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의아해 했습니다. 1년 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왕을 삼으려고 했을 때에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따돌리고 혼자서 산 속으로 도망하듯 피해버리신 주님께서 이제 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려고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1년 전과 사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에 올라간다는 것이 결코 가벼운 발걸음이 아니라는 것을 제자들도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챌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주님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눈엣가시처럼 여겨졌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왕이었던 헤롯도,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하고 다닌 예수님을 싫어했습니다.
또 산헤드린 공회를 주름잡으며 권력을 만끽하면서도, 자기들 스스로는 최고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을 싫어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고 공공연하게 외치고 다니시는 예수님이 자기들의 신앙적인 노선이나 율법으로 보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신성모독을 일삼는 이단아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로마 총독도 예수님을 싫어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유다 땅에 민란이 일어나서는 안 될 텐데, 예수라는 나사렛 시골 촌뜨기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수많은 군중들을 몰고 다닌다는 그 소문을 듣고는, 내심 마음이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언제 민중봉기가 일어날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예수가 예루살렘에 온다면, 자칫 잘못하면 예루살렘이 민란의 본거지가 되고, 온 나라는 곧 쑥대밭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에 유다의 치안을 위해서 로마로부터 파송 받은 책임자인 총독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그걸 아셨습니다. 당신이 예루살렘에 가면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환영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권력자들에게 잡혀서 고난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 그리고 결국에는 가장 치욕스러운 십자가를 져야 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묵묵히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셨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비장한 각오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셨습니다. 그런 주님의 뒤를 따라가던 제자들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리고를 지나고 예루살렘에 가까이 다가오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려 하신 목적이 왕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자들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3년 동안 함께 생활해왔지만, 지금처럼 비장한 예수님의 모습은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평소 주님다운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뭔가 굳은 결심을 하신 것 같았습니다. 전에 몇 번 말씀하시던 그 말씀이 어렴풋이 생각이 났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고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마20:18-19)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아니라, 감히 쉽게 말을 꺼낼 수 없는 아주 엄숙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묵묵하게 주님의 뒤를 따라가고 있을 뿐입니다.

예루살렘 근처에는 벳바게와 베다니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벳바게에 가까이 왔을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 둘을 부르시더니, 맞은편 마을 베다니로 앞서 가라고 하십니다. 마을에 들어가면 매여 있는 나귀를 발견하게 될 텐데, 그것을 풀어서 끌고 오라는 것입니다. 조금은 황당한 명령이었습니다.
누구의 나귀인지도 모릅니다. 또 주인이 끌고 가도록 허락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단순히 “주께서 필요해서 쓰시겠답니다.” 그런다고 해서 순순히 내어준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두 제자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베다니라는 작은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갔더니 정말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나귀새끼가 매여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그 나귀새끼를 풀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주인이 소리칩니다. “거 왜 남의 나귀를 푸는거요?” 주인으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반응입니다. 누군가가 자기의 나귀새끼를 풀어가려고 하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순순히 끌고 가도록 내버려둘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자들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필요하시답니다. 주님께서 쓰시겠답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나귀의 주인은 더 이상 아무 이유도 달지 않고 끌고 가게 해 주었습니다. 마치 주님이 맡겨놓으신 것을 되찾아가는 것처럼, 당연한 것으로 알고 아무 이유를 달지 않고 순수하게 나귀를 내어주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에는 나귀새끼 한 마리를 끌고 온 것처럼 기록되어 있지만, 마태복음을 보면, 나귀와 나귀새끼를 함께 끌고 왔다고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나귀새끼를 풀어서 데리고 오려고 하니까 어미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서, 주인이 나귀새끼 뿐만 아니라 어미까지도 함께 보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 주님은 나귀를 타고, 그것도 작디작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셨을까요? 서른 살이 넘은 청년이 조그마한 나귀새끼를 타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화려한 도시 예루살렘으로 들어간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솔로몬 시대 이후로 어떤 왕도 나귀를 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귀는 말보다도 훨씬 작고 가치 없는 짐승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개선장군이 입성할 때에나 왕이 입성할 때에는 말을 타고 입성했습니다. 나귀를 - 그것도 조그마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일부러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에서 예언적인 행위를 보게 됩니다.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다는 것은 ‘왕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주님은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왕은 세상 다른 왕들처럼 권력으로 통치하고, 백성들 위에 군림하려는 그런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평화의 왕 - 겸손과 온유의 왕’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말이 전쟁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나귀는 평화를 상징합니다. 그러기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는 것은 온 세상에 평화와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입성하시는 겸손하신 ‘만왕의 왕’의 모습을 예언적인 행위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평화의 왕이요 겸손과 온유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나귀새끼를 주님께 드렸던 -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시골 농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자신의 나귀새끼를 아낌없이 드렸던 그 주인의 모습에서 아주 순박한 시골 사람들의 순수한 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주님이 쓰시겠답니다.” 그 한 마디에 자기의 재산 목록 1호에 속한 나귀를 순순히 내어줄 수 있었겠습니까?
베다니라는 작은 마을은 예수님과 아주 친밀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몇 차례 예루살렘에 올라 가셨지만, 예루살렘에서 주무신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기만 하면 꼭 주무시는 장소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베다니라는 작은 마을입니다. 베다니로 가실 때마다 예수님은 그 마을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가정도 있었고, 문둥이 시몬의 집도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곳도 바로 이 베다니였습니다. 주님은 그곳에 가시면 그 순박한 시골 사람들과 식사도 같이 하고, 말씀도 나누면서 깊은 정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베다니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의 인격, 그리고 그분의 인자하심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군자(君子)는 군자를 안다”는 말처럼, 순수하고 소박한 시골 사람들과 순수하게 사셨던 예수님은 쉽게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원하신다면 무엇이든지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그런 관계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베다니에 자주 들리셨고, 또 순수하고 소박한 그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 하나 하나를 익히 잘 아셨습니다. 어느 때에는 누가 마을 어귀에다 나귀새끼를 매어 놓은 것까지도 알 정도로 그들에 대해서 익숙하게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깊은 사귐을 가져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 나귀 주인이 자기의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나귀와 나귀새끼를 ‘예수님을 위해서 내어줄 것’이란 사실도 아셨습니다.
우리나라가 어렵게 살던 시대에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거의 대부분 소를 키웠습니다. 그 소는 가난하게 살던 시골집들의 재산목록 1호였습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이고, 그 소보다 더 값나가는 것도 없었습니다. 자식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그 귀한 소를 팔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베다니의 작은 마을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에게 나귀는 아주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골 농부였던 그 나귀의 주인은 주님을 위해서 그 귀한 나귀와 나귀새끼를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다니 마을의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고 계실 때에 한 여인이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주님의 고난 주간에 주님의 장사를 준비하는 예언적인 행동을 한 한 여인의 감명 깊은 헌신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향유는 300데나리온 이상의 값비싼 것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일 년 동안 죽도록 일해서,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꼬박 모아놓은 돈과 같은 큰 액수입니다. 당시 시골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비싼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향유는 아주 귀한 곳에 쓸려고 평생 동안 모아놓은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여인들은 결혼하기 위해서 돈을 모을 때에 돈으로 모으지 않고 향유를 샀다고 합니다. 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향유를 사서 모아놓았다고, 결혼할 때가 되면 그걸 팔아서 결혼비용으로 씁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한 여인이 자신의 전 재산이요, 또 결혼비용으로 쓸려고 평생을 모아놓은 그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렸습니다. 예수님은 그걸 “죽음을 앞두고 있는 자신의 장사를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막 14:8)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베다니에는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 그리고 문둥이 시몬처럼, 이름이 드러나게 예수님을 극진히 대접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고 주님을 섬겼던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필요하시다면 기꺼이 쓰시도록 나귀새끼를 내어준 소박한 시골 농부도 있었고, 자신의 결혼을 위해서 평생 준비해 두었던 값비싼 향유를 주님의 머리에 부어드린 아가씨도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당신의 마지막 생애를 살아가실 수 있었고, 그걸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수 있었습니다.

현대인들은 무서울 정도로 영특합니다. 아이들까지도 영특해졌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어쩌면 아이들이 더 영특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옛날에는 아이들끼리 싸우면, 맞은 아이가 자기 엄마를 찾아가서 “아무개를 나를 때렸다”고 일러 바쳤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맞은 아이가 때린 아이의 엄마를 찾아가서 “당신의 아이가 나를 때렸다”고 이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베푸는 데에는 인색하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조금도 양보할 줄 모르는 영특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기심이나 명예에 조금이라고 손상이 된다면 어떤 경우에도 용서가 없는 시대가 현대사회입니다. 순수함이 없어졌습니다. 소박하게 하나님만을 사랑하던 그 마음들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재산목록 1호인 나귀와 나귀새끼를 기꺼이 드렸던 시골 농부의 그 순수하고 소박한 헌신과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서 모아두었던 향유를 모두 주님의 머리에 부어드렸던 그 여인의 헌신이 정말로 그립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롯 유다는 은 30개에 스승인 주님을 팔아먹고 말았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주님까지도 팔아먹는 게 가롯 유다였습니다. 오늘의 사회가, 오늘의 교회가, 오늘의 교인들이, 순수하고 소박하게 주님을 사랑했던 이름 없는 헌신자들처럼 살지 못하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스승까지 팔아먹는 가롯 유다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고 가슴 아플 뿐입니다.

나귀 주인이 주님께 나귀를 내어준 것은 단순히 나귀라는 짐승만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드린 것이었고, 자기 전부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드리는 헌신이 있지 않고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주님을 위해서 나귀를 풀어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전부를 드리는 행위입니다. 전부를 드리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인 스펄젼(Charles H. Spurgeon, 1834∼1892) 목사님의 일화 가운데 이런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그 교회의 어떤 교인이 백지 수표책을 가지고 와서는 목사님께 주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께서 필요하실 때에, 목사님께서 쓰시고 싶은 만큼 이 수표를 쓰십시오.” 그 교인의 정성에 감동된 스펄젼 목사님은 그 수표책을 받아들고서 평생 동안 한 번도 그 수표를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단지 늘 가슴에 안고 살면서, 그 수표책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 교우님의 사랑을 가슴 깊이 느끼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돈이 많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어찌 백지수표를 통째로 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전부를 준 것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려는 우리 주님도 바로 그런 ‘자기를 온전히 드린 헌신과 사랑’이 있었기에 그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네 나귀새끼를 나에게 다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얼마의 헌금을 원하시는 게 아닙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얼마의 헌금이나 얼마의 시간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릴 때에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구원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요즘 인터넷에는 “반성하는 주기도문”이란 글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우루과이의 한 작은 성당 벽에 써 있는 글이라고 하는데,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기도문을 드릴 때
“하늘에 계신” 하지 말아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 라고 하지 말아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 라고 부르지 말아라. 아들 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지 말아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나라가 임하옵시며” 하지 말아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지 말아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하지 말아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 하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지 말아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하지 말아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 다니면서.“악에서 구하옵소서.” 하지 말아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아멘” 하지 말아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나는 주님을 위해서 희생하지 않으면서 주님의 자비만을 바라는 못난 우리의 모습을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내 것을 포지하지 않은 채 더 많은 것만을 바라는 기도는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가르쳐준 글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름 없이 자신의 전부를 드렸던 예수님께 드렸던 이름 없는 한 시골 농부와 자신의 전부를 주님의 머리에 부어드린 이름 없는 한 여인보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스승까지도, 주님까지도 팔아먹는 가롯 유다와 같은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느 쪽 사람입니까? 이름 없이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헌신의 사람입니까?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주님까지도 팔아먹는 가롯 유다입니까?

<2007년 4월 1일 주일낮예배-종려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