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에베소서 5:1-2 >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인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이 그린 그림 가운데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다소 긴 제목의 그림이 있습니다.

<폴 고갱의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현재 미국 보스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그림은 1897년 고갱이 남태평양 작은 섬 타히티에 머물면서 거기에서 그린 것입니다. 그 때 고갱은 건강이 너무나 좋지 않았고, 병을 치료받을 돈조차 없을 정도로 생활고를 겪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사랑하는 딸(Aline)이 젊은 나이에 폐렴으로 죽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급기야 자살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는 죽기 전에 마지막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 한 달간 열정에 사로잡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품에 몰두한 끝에 이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고갱은 이 그림을 그린 후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최악의 상황에서 자신에게 남은 모든 정력을 이 작품에 다 쏟아 부었다.’고 쓰기도 했고, 이 그림을 ‘자신의 작품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만큼 이 작품에 심혈을 기울였고,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제목이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그림 오른쪽에는 잠들어 있는 아이와 세 명의 여인이 앉아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보라색 옷을 입은 두 명의 여인이 서로 비밀을 털어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림 가운데에는 과일을 따고 있는 여인이 있고, 그 아래에는 과일을 먹고 있는 아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선악과를 따먹었던 하와와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비유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왼쪽에는 두 팔을 양 옆으로 들어 올린 우상이 피안의 세계를 가리키듯 먼 곳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두 여인이 앉아 있습니다. 얼굴을 감싸 앉은 채 절규하고 있는 여인은 지옥을 상징하는 것이고, 건강한 젊은 여인은 천국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비록 한 폭의 그림이지만 고갱은 이 그림에서 우리 인생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기저귀를 찬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인간 탄생의 신비를, 과일을 따는 여인에게서 오늘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심오한 질문을, 그리고 지옥과 천국을 상징하는 두 여인에게서 우리의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고갱은 이 그림을 그린 후에도 여전히 힘든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대작이라고 자신했던 이 그림은 다른 그림과 합해 고작 1천 프랑에 팔렸고, 그는 어떤 주목도 받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오래 전에 입었던 다리 부상으로 인해 통증은 날로 가중되었고, 건강도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술과 진통제가 없이는 단 하루도 견디기 어려운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그는 타히티 작은 섬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여러분, 폴 고갱의 그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나 ‘어디로 가는가?’보다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더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나 ‘나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늘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할 영원한 과제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질문 앞에 우리는 무어라 대답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답에 나는 얼마나 정직하게 응답하며 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 BC. 65-8)의 시 <오데즈(Odes)>에 나오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을 ‘오늘을 즐겨라’라는 의미로 알고 있지만, 보다 더 정확한 의미는 ‘이 날을 붙잡으라. 오늘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같은 말이지만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그 말이 주는 의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말의 의미를 어떻게 찾느냐에 따라서 그가 살아가는 삶의 방향이 달라지고,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은 ‘카르페 디엠’이라고 외치며 ‘내일은 미지의 세계이니 오늘 먹고 마시고 즐기자!’ 그러면서 향락과 쾌락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카르페 디엠’을 마음에 새기면서 ‘오늘 하루 충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자.’라고 다짐하며 매순간을 값지게 살려 노력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말할지라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자기정체성이 우리를 정말 그리스도인다운 사람으로 이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자기 우월적인 생각을 줄 수도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나 자신에게만 집중되면 스스로 교만에 빠지고,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은근히 멸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스스로 아브라함이 자손이라고 외치면서 우리만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무시하고 멸시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는 말을 겸손하게 받습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겸손하게 삽니다. 이렇게 부족한 것이 많고 미련하고 죄가 많은 나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셨고 구원해 주셨으니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대답이 의미하는 바를 바르게 깨닫지 못하면 전혀 다른 결과를 얻고 맙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다시 우리에게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우리 스스로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는 대답을 할 수 있다면, 그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의 이미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가슴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찰을 붙이고 다닌다면 그게 오늘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단순히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는 사람’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보다더 적극적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다시 물어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지금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이 두 가지 권면은 사실상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본문의 정확한 의미는 하나님을 본받는 모방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모방해야 합니까?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를 이 땅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 그 사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한일서 4:9-10) 그렇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님, 화목제물이 되어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러 우리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예수님에게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고, 한량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답게, 그 사랑이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시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의 모습, 우리가 닮아야 할 모습은 참으로 많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늘 겸손하게 사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화려한 궁궐에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초라하고 볼품없는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지만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기 위해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찌 당신이 내게 오시나이까?’(마태복음 3:14)라고, 자신이 예수님께 세례 베푸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만류함에도 예수님께서는 겸손히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공생애를 사시면서 예수님께서 왕이나 대제사장이나 권력자들에게 빌붙어 살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권력자들과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친구 삼아 그들과 어울리셨습니다. 인격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 어린아이들을 품에 안고 축복해 주셨고, 제대로 된 사람취급을 받지 못한 여인들을 인격적 존재로 대우하셨고, 사람들에게 죄인이라고 낙인찍힌 세리를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 천벌을 받아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놀림거리가 된 병자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을 어루만지시며 고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열외되었다고, 하나님께서 포기하셨다고 생각한 이방인들에게까지 찾아가셔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야이신 주님께서 낮고 천한 자리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오셨고, 늘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 주님은 늘 겸손하게 사셨습니다. 우리는 그 겸손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또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주님이시요 선생이신 주님께서는 마땅히 제자들로부터 섬김 받으시는 것이 당연함에도 섬김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섬겨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섬겨달라고 요구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 그 말씀처럼 예수님은 섬김 받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섬기셨고, 심지어 당신의 목숨을 죄인인 우리를 위해 기꺼이 내어주실 정도로 우리를 섬겨주셨습니다. 그 섬김도 우리가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또 단순하게 사셨습니다. 마땅히 누리실 수 있는 것을 누리지 않으셨고, 가지실 수 있는 것도 갖지 않으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누가복음 9:58)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무도 없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면서 도리어 당신이 가지신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당신의 생명까지도 말입니다. 그런 희생과 단순한 삶도 우리가 본받아야 합니다.

   이런 예수님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예수님은 사랑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실현자로 이 땅에 오셔서 오직 사랑하며 사셨습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예수님의 모습을 한 마디로 하면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주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며 사는 믿음의 사람이라면, 그 주님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도 마땅히 주님의 사랑을 닮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하며 살고 있습니까? 나는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사랑을 베풀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까? 나의 작은 삶에서 얼마나 그리스도의 사랑이 보여지도록 사랑하며 살고 있습니까? 내 작은 삶에서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지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예수김과 똑같은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날고 기어도 예수님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예수님처럼 되어야 한다고 기대하진 않으실 것입니다. 단 우리는 우리의 작은 삶에서 조금씩이나마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조금 더 주님을 닮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조금 더 예수님을 닮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은 끊임없이 나를 향해 던져진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그것이 더 중요한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이것이 오늘 우리를 향한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몇 달 전에 여러 명으로부터 받은 카톡의 글 가운데 아주 감명 깊은 글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 가운데 이 글을 받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폴이라고 하는 한 회사원이 뉴욕에서 중요한 미팅을 마치고 자기 팀 동료들과 함께 공항으로 갈려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날이 금요일 오후 저녁시간이어서 교통체증이 심해 택시 잡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기적적으로 빈 택시 하나가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 택시를 보는 순간 다른 동료들이 쏜살같이 달려가서 그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너무 빨리 달려가는 바람에 길 가에서 장사하고 있는 노점상의 야채 과일 박스를 차버리게 되었고, 과일과 야채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폴의 일행 중 어느 누구도 이를 개의치 않고 택시에 올라탔습니다. 그러나 폴은 택시를 타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섰습니다. 택시를 탄 동료들이 ‘빨리 타라’고 외쳤습니다. 그 택시를 타지 않으면 비행기를 놓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폴은 자신을 놔두고 먼저 가라고 일행을 떠나보냈습니다. 그리고는 노점상 할머니에게 다갔습니다. 할머니를 울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가서 봤더니 앞을 보지 못한 시각장애자였습니다. 눈이 성한 사람이라면 바닥에 흩어진 과일이나 야채를 주으면 그만인데, 할머니는 앞을 보지 못하니까 과일과 야채를 주워 담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폴은 앉아서 울고 계신 할머니를 위로해 드리면서 땅바닥에 떨어진 야채와 과일을 하나씩 줍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폴 곁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다들 자기 갈 길이 바쁜지 아무도 앞을 보지 못하는 노점상 할머니의 울음과 폴의 행동에 관심도 갖지 않았습니다. 폴이 야채와 과일을 다 정돈한 후에 지갑을 꺼내 돈을 할머니 손에 쥐어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이 돈이면 손해 보신 것 충분히 해결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그 할머니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혹시 예수님 아닌가요?” 이 말을 들고 당황한 폴이 ‘나는 절대 예수가 아닙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시각장애인 할머니가 아니라면서 계속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조금 전 노점 가판대가 넘어지고 과일과 야채가 땅에 떨어질 때 제가 도움을 요청할 분은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나에게 다가오셔서 제발 나를 도와주세요.’ 그랬는데 기도의 응답처럼 당신이 와서 나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예수님이 틀림없습니다.” 그날 밤 폴은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하룻밤을 더 뉴욕 호텔에서 머물면서 한밤중에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당신을 예수님 같다고 착각하게 했을 때가 언제였던가?’

   우리의 삶에서 종종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종이박스를 실은 리어카를 힘겹게 밀고 가는 할아버지, 코로나19로 인해 무료급식이 멈춘 바람에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거리 한 귀퉁이에 쓰려져 있는 노숙인, 어려운 시기에 장사가 되지 않아 문은 열었지만 눈물로 사람을 기다리는 가게 주인들, 아무런 힘도 없이 모욕를 주는 손님 앞에서 눈물을 훔치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여전히 일해야 하는 아르바이트생, 돈을 벌어 가족들에게 보내주기 위해 낯선 이국땅에 와서 외롭고 고달프게 하루하루를 힘에 겹도록 노동해야 하는 외국인노동자들, 언어가 서툴지만 자식을 낳고 이 땅에 적응하기 위해서 악착같이 노력하는 다문화가정의 주부들, 상사에게 억울한 대우를 받아도 참으면서 가족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직장인들, 아픈 마음을 어디에도 호소할 수가 없어 홀로 그 아픔을 다 껴안고 남몰래 눈물 흘리는 사람들. 어디 그것뿐입니까? 우리가 조금만 눈을 돌리면 우리 주변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지금도 주님을 기다릴 것입니다. ‘예수님 나를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며 말입니다. 그 때 그리스도인인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가가 손을 내민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주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당신 혹 예수님 아닌가요?’ 할머니가 폴에게 던진 이 질문을 우리는 언제 받아보셨습니까? 사람들이 나를 향하여 ‘당신 예수님이신가요?’ ‘당신 예수 믿는 사람인가요?’ ‘당신 목사인가요?’ ‘당신 장로나 권사나 집사님 아닌가요?’라고 질문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닮는 삶을 사십시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그 사랑 안에서 작은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그것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답일 것입니다.

< 2020년 7월 19일 주일낮예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