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왕이라구요?

< 본문 – 사도행전 12:1-25 >

지난 2012년 개봉하여 1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았던 ‘광해 – 왕이 된 남자’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조선의 15번째 임금인 광해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광해군 8년 왕위를 둘러싼 권력다툼이 극에 다할 무렵,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으로 점점 더 난폭해져 가는 광해군은 자신의 역할을 대신할 대역을 찾게 됩니다. 그러다가 광해군과 외모도 비슷하고 타고난 말재주를 가지고 있는 하선이라는 사람을 발견합니다. 영문도 모른 채 궁으로 끌려간 하선은 광해군이 자리를 비운 하룻밤 왕의 대역을 맡게 됩니다. 그런데 광해군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서, 광해군이 치료를 받는 동안 천민인 하선이 왕의 역할을 계속 해야 했습니다. 왕이 된 하선은 나라의 상황과 국정을 이해하면서 자신이 진짜 왕인 것처럼 나라를 운영하게 됩니다. 정치적 상황을 무시한 그에게 조정 대신들은 반감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궁핍하게 사는 백성들을 위해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는 등 현실적인 정책을 펼쳐나갑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명나라 오랑캐에게 굴종하는 대신들을 향해 가짜 왕 하선이 이렇게 외치는 장면일 것입니다. “그깟 사대의 명분이 무엇이오? 도대체 뭐길래 2만의 백성들을 사지로 내몰라는 것이오? 임금이라면, 백성들이 지아비라 부르는 왕이라면 빼앗고, 훔치고, 빌어먹을지언정 내 그들을 살려야겠소. 그대들이 죽고 못사는 사대의 예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갑절 백 갑절은 더 소중하오.”

  가짜 왕은 백성들을 위한 정사를 펼치려 하는데, 진짜 왕인 광해군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가짜를 내세우는 모습을 그린 이 영화는 우리에게 참된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 광해군을 연상하게 만드는 왕이 등장합니다. 헤롯 왕입니다. 오늘 본문의 헤롯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롯의 가문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헤롯이라는 이름이 여러 번 등장하지만 늘 같은 사람을 가리키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고, 베들레헴의 아이들을 학살한 사람은 헤롯 대왕(주전 37-주전4년 통치)입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라 에서의 후손인 이두메 출신이지만 유대 하스몬 왕가의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며 유대인들의 반발을 가라앉히고, 로마 황제의 신임을 사서 유대의 분봉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유대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그는 늘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가 메시아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이유는 자신의 왕위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왕위를 빼앗으려 한다는 죄목을 씌워 장모와 처남뿐만 아니라 아내도 죽였고, 심지어 자신의 아들까지도 죽였습니다. 그런 그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던 그 해에 온 몸이 썩어가는 병으로 극심한 고통 중에 죽고 맙니다. 그리고 등장한 두 번째 헤롯은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시대에 통치했던 헤롯입니다. 그가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 주전 4년-주후 39년 통치)입니다. 그는 나바테야 왕국의 공주와 결혼했지만, 자신의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의 미모에 빠져 아내와 이혼하고 헤로디아와 재혼하게 됩니다. 세례 요한이 그것에 대해서 비판하자, 세례 요한을 목 베어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런 그도 마지막에는 칼리굴라(Caligula) 황제에 의해서 갈리아로 추방당했고, 그 이후 그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세 번째 등장한 헤롯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헤롯 아그립바 1세(Herod Agrippa Ⅰ, 주후 37-44년 통치)입니다. 그는 헤롯 대왕의 손자이며 동시에 헤로디아의 동생입니다. 그의 할머니 즉 헤롯 대왕의 아내와 그의 아버지인 헤롯 대왕의 아들은 헤롯 대왕에 의해서 죽임당했고, 그는 비운을 안고 자랐습니다. 로마로 유학 가서 방탕하게 지내다가, 칼리굴라가 황제가 되면서 유대의 왕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삼촌이자 매형인 헤롯 안티파스와 누나인 헤로디아가 추방당한 것은 이 헤롯 아그립바 1세가 그들을 황제에게 고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리던 지역까지 물려받아 막강한 권력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당시 유대사회가 로마의 관할 하에 있었기에 황제의 권력만큼은 아닐지라도, 유대의 왕으로서 헤롯 아그립바 1세의 권력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헤롯이 얼마나 안하무인으로 자신의 권력을 휘둘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헤롯이 자신의 권력을 교회를 박해하는데 썼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가 그랬고, 사울이라는 사람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제 최고의 권력자인 왕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교회를 박해하고 있습니다.

헤롯이 교회를 박해하려 한 이유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자신이 비유대인 출신이다 보니 유대인이나 유대 권력자들에게 호의를 얻어야 하는 상황에서, 아마도 기독교에 대해서 위협을 느끼고 있던 종교지도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교회를 박해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헤롯이 칼로 야고보의 목을 베었다고 말씀합니다. 칼로 목을 베는 참수형은 유대인들이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이라 여기는 방법이었습니다. 아마도 공개된 장소에서 처형했을 수도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의 처형을 보고 유대인들은 광분을 합니다. 3절의 말씀처럼 그 일을 기뻐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더 큰 일을 벌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베드로까지 죽이려 한 것입니다. 베드로를 죽이려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야고보도 그렇거니와 베드로가 무슨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죽어야 할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를 죽이고 난 후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를 죽이면 유대인들이 더 기뻐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인기를 위해서, 그래서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하려는 목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람을 죽이는 아주 폭력적인 방법으로 말입니다.

어쩌면 왕이기에 이 정도는 해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왕의 권력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어느 누구도 그 잘못된 권력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기에 헤롯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러나 그의 권력에 제동이 걸렀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베드로를 하나님께서는 한밤 중에 천사를 통해서 끌어내셨습니다.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나온 베드로는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서 기도하는 성도들을 만나 하나님의 역사를 증언한 다음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날이 새어 베드로가 사라진 것을 안 헤롯은 베드로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헤롯이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하매”(19절)라고 단백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여러분 그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다. 감옥에 갇힌 베드로가 사라지자 헤롯은 분노했을 것입니다. 그리곤 ‘당장 찾아내라!’고 명령을 내렸겠지요. 아마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 군인들을 포함해서 동원될 수 있는 사람들이 다 동원되어 베드로를 찾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고 명령합니다.(19절)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자, 파수꾼들이 베드로를 빼돌렸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 파수꾼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베드로를 빼돌린 것은 하나님이신데, 그것을 알지 못하는 헤롯은 죄없는 파수꾼들을 죽인 것입니다. 왕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누구든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렇게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게 왕이 가진 권력이니까요.

헤롯의 기행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여전히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한 헤롯은 가이사랴로 내려갔고, 거기에서 두로와 시돈 사람들의 방문을 받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헤롯과 불편한 관계에 있던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의 마음을 풀어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이스르엘 평야 등에서 나오는 곡식을 사들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날을 택한 것은 헤롯이었습니다. 헤롯이 날짜를 정했다는 것은 헤롯이 유대 지역만이 아니라 두로와 시돈 사람들에게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한 날에 헤롯은 왕복을 입고 그들 앞에 나섰습니다. 은으로 짜여진 왕복은 태양 광선에 반사되면서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한 빛을 발했습니다. 그 모습은 두로와 시돈에서 온 사신들에게는 황홀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헤롯이 왕좌에 앉아 그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데, 그 소리가 위엄찼던 모양입니다. 헤롯의 연설을 들은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의 목소리에 정신을 잃었습니다. 헤롯의 연설하는 목소리가 위엄차게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곤 이렇게 소리칩니다.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22절) 유대인들은 사람을 신적 존재로 추앙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두로와 시돈에서 온 사람들은 자신을 신처럼 추앙해 줍니다. 어쩌면 그것은 헤롯이 가장 듣고 싶어 하던 소리였을 것입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유대인들에게 그렇게도 인정받고 싶어 했는데 그렇지 못해 그게 늘 마음에 불만이었던 헤롯의 가문입니다. 그런데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자신을 신처럼 여겨줍니다. 물론 그것은 헤롯에게 아부하기 위해서 한 말일 것입니다. 어떻게든 헤롯에게 잘 보여 헤롯의 노여움을 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헤롯은 그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신처럼 추앙하는 말에 정신을 잃고 마치 자신이 정말로 신이나 되는 것처럼 착각했습니다. 그리곤 그 영광을 다 자신의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헤롯은 죽음당하고 말았습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23절) 참 해학적인 표현입니다. 사람의 목숨을 죽이고 살리는 엄청난 권력을 가진 헤롯 왕입니다. 자신의 휘하에 있던 군인들도 죽이라는 명령 한마디로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졌습니다. 자신이 통치하던 유대에서만이 아니라 두로와 시돈 사람들에게까지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던 헤롯입니다. 이방 사람들에게 신으로 추앙을 받던 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막강한 권력을 가진 헤롯이 벌레에게 먹혀 죽고 맙니다. 인간의 권력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해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권력이 아무리 막강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 치시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하찮은 벌레에게 먹혀 죽는 게 인간입니다. 벌레에게 먹혀 죽는 인간인데, 왕의 자리에 올랐다고 자기의 권력을 위해서 사람을 죽이고, 자신이 신인 것처럼 착각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렇게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삼촌을 몰아내고 왕이 된 지 불과 7년만에 벌레에게 먹혀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이어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24절) 하나님이 승리하셨다는 것입니다. 세상 권력은 어느 순간엔가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자리까지 넘보는 권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결국 벌레에 먹혀 죽는 게 인간입니다. 정치 권력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돈의 힘도, 육체적 완력도 어느 순간 다 허망하게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치시면 한 순간에 사라집니다. 유대 역사학자 요세푸스(Josephus, 37-100년 경)에 의하면 헤롯은 급성 복통으로 고통을 당하다가 불과 5일 만에 죽었다고 합니다.

  세상의 권력은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지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더 흥왕해 갑니다. 교회는 박해를 받지만 결국 승리함을 말씀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이지만 하찮은 벌레에 먹혀 죽는게 인간입니다. 왕이라고 떵떵거리며, 자기 욕망을 위해 사람 목숨 소중한 줄 몰랐던 헤롯은 그렇게 죽었습니다. 그게 진정 왕이라 할 수 있을까요? 본문은 헤롯이 그의 손을 들어 교회를 해하려 하고, 야고보 사도를 죽였고, 베드로까지 죽이려 했다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은 하나님의 사자가 헤롯을 치니 헤롯이 벌레에게 먹혀 주었고,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해져 갔다는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누가 진정한 왕입니까? 헤롯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오늘 창립기념주일을 맞은 우리 교회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엊그제 ‘아침의 묵상’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임을 인정할 때 교회는 교회다울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인간의 권력이나 힘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건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인간일 뿐입니다. 아무리 큰 권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박수를 받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벌레조차 이겨낼 수 없는 인간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기에 늘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인간됨의 도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의 지혜를 가르쳐준 전도서는 이렇게 글을 맺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문이니라.”(전도서 12:13)

< 2024년 6월 16일 주일낮예배 >